
성냥이 in 장도
온 우주를 담은 듯 크고 투명한 눈동자, 요염하게 리듬을 타는 발걸음, 알 듯 모를 듯 흔들리는 꼬리. 인간은 오래전부터 고양이가 지닌 독자적인 매력에 이끌려 그들과 삶의 공간을 공유해 왔다.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간과 고양이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서로를 관찰하고 공존해 왔다.
<섬냥이 in 장도>는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고양이의 생태적 특성과 삶의 태도를 회화·조형 등 다양한 작업으로 펼쳐 보이는 전시다. 작품을 따라가며 고양이의 몸짓과 선택, 관계 맺기의 방식이 우리의 삶과 태도에 어떤 사유를 촉발하는지 함께 탐색하고자 한다.
고양이는 반려 가능한 포유류 가운데서도 특히 '영역'의 가치를 중시하는 동물이다. 자신이 머물기 원하는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질서와 행복을 구축한다. 산 중턱의 따스한 볕, 들판의 바람, 아스팔트 위의 온기처럼 고양이는 삶에 유리한 조건을 민감하게 감지하며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린다.
한겨울 솜이불이 주는 포근함처럼, 그들은 한낮의 햇살을 이불 삼아 몸 위에 덮는다. 햇볕 아래에서 지나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고양이의 표정과 태도는 주저함 없이 당당하며, 미래를 앞서 염려하기보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선명하게 살아낸다. 그들이 보여주는 묘생(猫生)의 방식은 종종 인간의 삶과 대비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장도는 다양한 생명들이 저마다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는 공간이다. 사람이 장도에 정착해 거주한 이후, 고양이 또한 이곳에 스며들어 함께 살아왔을 것이다. 창작스튜디오 운영기간 동안 많은 고양이들이 이곳을 오갔고, 입주 작가들은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며(디가, 미미, 블링, 피클, 짜클 등) 먹이를 건네고 일상을 나누었다. 집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5~20년이라면, 길고양이(특히 섬이라는 환경에 놓인 고양이)의 삶은 길게 잡아도 7년 남짓으로 알려져 있다. 그 숫자가 시사하듯, 한때 장도에서 마주했던 고양이들 가운데 다수는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바다와 인접한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고립과 야생성은 하루하루를 생존의 시간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고양이들은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며 섬에서의 삶을 이어왔다. 매해 자신을 선택해 줄 '집사' 작가를 찾아 눈을 맞추고, 먹이를 요구하며, 때로 곁을 내어주고,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고양이는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존재다. 애묘가들이 흔히 말하는 '간택'과 '집사'라는 표현은, 관계의 시작이 일방적 소유가 아니라 선택과 수용의 교차 위에 놓여 있음을 상징한다. 고양이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감각과 감정을 교환하며, 그 거리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동등하게 조율한다. 이는 상대의 생활과 취향, 고유한 리듬을 존중하는 관계의 방식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타인의 삶에 쉽게 개입하거나 판단하며, 불편을 감내한 채 갈등을 누적시키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고양이의 관계 형성 방식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본다면, 관계의 경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보다 평온한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고양이의 모습을 담아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행복을 지나치게 먼 곳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내가 속한 환경(사회)에 대한 불만이 스스로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건 아닌지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질문들을 차분히 마주해 보길 제안한다.
고양이가 장도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이 삶과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거울이 될 것이다. 관객은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이 지켜온 거리와 선택의 이유를 조용히 되묻고, 지금 여기의 삶을 조금 더 다정하게 감각 하는 순간을 맞이하길 바란다.
- 김혜진

피클(Pickle) FHD 단채널 영상, 사운드, 19분 35초, 2026
김희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세 편의 영상을 선보인다. 지난해 예울마루 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로 활동한 그는 10개월 동안 장도에 머무르며, 섬에 살아가는 여러 고양이들과 마주했다. 그중 '피클'은 작가와 아주 사적이고도 은밀한 관계를 형성한 특별한 섬고양이이다.
영상 작품 <피클>은 김희수 작가(이하 희수라 한다.)가 고양이 피클로부터 '고양이의 세계'에 초대받던 날의 기록이다.
장도에서 출발해 예울마루 옥상을 지나 다시 장도로 돌아오는 한밤의 여정 속에서 희수와 피클은 서로의 영역을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이 영상은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된 둘만의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이들과 함께 걷는다. 그리고 타인과 걸을 때 대개 나란히 걷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영상 속 희수와 피클은 나란히 걷지 않는다. 피클이 앞장서고, 희수가 그 뒤를 따르며, 때로는 피클이 멈춰 서서 희수를 기다린다. 이러한 반복적인 장면은 '함께 걷는다'는 의미를 새롭게 환기한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서로 다른 속도로 나아가되, 끝내 서로를 시선에서 놓치지 않고 이끌어주고 기다려주는 시간, 어쩌면 그것이 함께함의 진정한 의미일지 모른다.

모든 사랑스러운 날들(Every adorable day) Conte on Daimaru, 60.6x72.7cm, 2023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감정을 품은 채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는 쉽게 말로 옮길 수 없는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들이 늘 자리하고 있다. 성유진 작가는 이러한 비밀스럽고 다층적인 감정에 주목하며, 그것을 회화적 형상으로 섬세하게 풀어낸다.
작품 속 존재는 소녀의 형상을 한 고양이일 수도, 고양이의 형상을 한 소녀일 수도 있다. 이중적이고 모호한 형상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말로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본질을 떠올리게 한다. 정교한 털의 결, 섬세한 표정, 조용한 눈빛과 쫑긋 세운 귀는 설명되기보다 먼저 감각되고 공감되는 내면의 언어를 드러낸다.
작가는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인 고양이를 매개로 관람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힌다. 이번 전시가 관람자에게도 쉽게 이름 붙일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바라보고,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지붕 위의 고양이(Roof Cat) 캔버스에 유채, 97x97cm, 2023
장윤지 작가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다. 그의 화면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란 운동시설, 좁은 아스팔트 길, 계단으로 이어진 산책길 등 오랜 시간 도시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 도시 풍경 속에서 포착된 특별한 순간은 길고양이와의 우연한 만남이다. 소소하지만 어딘가 신비로운 이 시간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잠시 스치며 공감해내는 하나의 기적처럼 다가온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우리는 그들에게 빠져든다. 그루밍을 하는 모습, 몸을 웅크린 채 식빵을 구우며 졸고 있는 모습,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을 응시하는 모습까지, 고양이만의 습성은 인간을 기어이 매혹한다.
인간과 고양이가 걷는 길은 본래 다르다. 그러나 때로 그 두 개의 길은 우연히 맞닿는다. 작지만 마음을 떨리게 하는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순간, 일상은 곧 행복이 된다. 장윤지 작가가 산책하며 마주한 일상들을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 역시,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우다다 행진곡(The Scampering March) 단채널 영상, 가변크기, 2026
조세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달리'로 벽사기복(辟邪祈福)'의 호랑이를 축소한 존재로서 현대 사회에서 하루의 안녕을 비는 상징적 존재다. 달리는 느리지만 꾸준히, 자신의 속도로 일상의 중력을 이겨내며 봄을 몰고 관객을 향해 달려온다. 봄은 희미하지만 확고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의미하며, 달리의 꾸준한 발걸음은 혼돈 속에서도 나아가는 삶의 지속성을 표현한다. 달리의 느리고 유유한 움직임은 삶의 복잡한 과정 속에서 각자의 속도와 리듬을 찾는 여정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위로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희망을 전달하고자 한다.
<너에게, 나에게, 모두와 함께>는 리듬 속에서 관객이 고양이들과 함께 직접 율동하며 감상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관객은 고양이들과 몸을 맞추어 움직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동화되고, 즐거움을 느끼며, 즉각적인 신체 반응을 통해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다다 행진곡> 또한 관람객에게 다양한 감각으로 작품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행진'이라는 행위를 통해 모든이의 하루 안녕을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재치 있게 표현된다. 조세민 작가의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함께 발맞추어 걸으며, 오늘을 무사히 잘 살아내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함께 기도해보면 어떨까.
전시관람 안내
전 시 명 : GS칼텍스 예울마루 기획전시 '섬냥이 in 장도'
전시기간 : 2026년 3월 27일(금)~ 6월 21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장 소 : GS칼텍스 예울마루 장도 전시실
관람시간 : 오전 10시 ~오후 6시
입 장료 : 3,000원
장도는 물때에 따라 통행가능 시간이 다르니 방문 전 예울마루 홈페이지에서 통행가능 시간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라남도 여수시 예울마루로 8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