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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먹고 자라는 ‘고양이 인간’-화가 성유진

고경원 ㅣ 2009-06-26

 

성유진은 고양이 인간을 그리는 화가다. 그의 고양이 그림을 보고 에일리언 같다는 사람, 원숭이가 아니냐는 사람, 심지어 골룸 같다는 사람까지 반응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림에 대한 감상은 한결같다. 무슨 그림이 이렇게 괴기스럽냐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그의 고양이 그림이 마음의 지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불안을 토해내는 마음을 견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 작가의 분신인 고양이 인간이다.

 

 

 

사람이 싫다면 헤어지면 되고, 몸담은 곳이 싫으면 떠나면 된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건 마음이다. 내 마음이 나를 베고 찌른다 해서 떼어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고통스런 상황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낄 때,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발 딛고 선 땅, 숨 쉬는 순간이 모두 지옥이 된다. 성유진은 그러한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한 자아를 ‘보타로스’(Botaros)라는 조어로 설명하는데, 이는 몸(Body)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 타르타로스(Tartaros)를 조합한 것이다.

 

 

마음의 지옥에 사로잡힌 몸  

 

불안한 자아를 반영한 고양이 인간을 그리는 작가에게, 2006년 3월부터 함께 살아온 고양이 샴비는 특별한 존재다. 작품에 영감을 주는 모델이자, 깊은 우울감에 허덕이던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발리니즈 종의 고양이 샴비였다.  

 

 

“사돈언니가 아기고양이를 주신다고 해서 보러갔는데, 하나는 페르시안 아기고양이였고, 하나는 샴비였어요. 사돈 언니의 고양이 이름이 ‘효리’여서, 그럼 제 고양이는 샴고양이 계의 ‘비’로 부르자 싶어서 이름이 샴비가 된 거죠. 좀 쑥스럽지만…. 그땐 발리니즈인 것도 모르고, 얼굴과 발이 까매서 샴인 줄 알았거든요.”

 

샴비를 데려온 뒤부터 그의 삶도 서서히 달라졌다. 어린 샴비는 성격이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종종 사고를 쳤다. 강아지처럼 산책을 좋아해서 밖으로 나가자고 보채기도 했다. 그런 샴비를 보고 푸념도 하고 혼도 내면서, 성유진은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을 조금씩 해방시켰다. 마음속 골방에 자기 자신을 가두었던 그를 밖으로 꺼내준 게 샴비였던 셈이다.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 고양이, 샴비

 

 

“샴비는 저에게 삶의 의미를 상징하는 고양이 같아요. 제가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을 줬으니까요. 앞으로도 샴비는 제 작업 속에서 함께할 거예요. 아직도 저는 사람들에게 저의 솔직한 모습을 보이기가 어려워요. 보여줬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은 가족들에게도 감추게 돼요. 하지만 고양이 앞에서는 그런 감정을 다 내보이게 되죠.”

 

 

가장 힘겨웠던 시간 언제나 곁에서 함께해준 친구이기에, 성유진에게는 샴비의 모든 것이 소중하다. 다른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버리는 고양이의 젖니라든가, 수염, 발톱 등도 그에게는 소중한 기념품이고 수집품이다. 이갈이가 끝났으니 젖니는 더 이상 빠지지 않지만, 요즘도 샴비의 수염과 발톱은 눈에 띄는 대로 주워 예쁜 유리병에 모아둔다. 샴비의 사진과 함께.

 

 

“샴비를 데려오고 나서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인데, 바닥에 젖니가 떨어져 있는 거예요. 보통 생후 1년 안돼서 이갈이를 하거든요. 덩치는 어른고양이처럼 커도 아직 애기구나, 그때 느꼈어요. 제가 막내라 엄마가 저를 유독 아끼셔서 탯줄도 모아두셨다는데, 그 생각도 나고. 그래서 샴비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서 모으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샴비와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2008년 난지창작스튜디오 3기 입주 작가로 선정되면서, 반려동물은 스튜디오에서 키울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할 수 없이 보모에게 샴비를 맡겼다. 가끔 보모가 샴비와 함께 스튜디오로 놀러오면, 몸줄을 채우고 근처 잔디밭을 산책하는 게 낙이다. 풀 먹기를 유독 좋아하는 샴비를 위해 연한 풀도 뜯어다주고 함께 천천히 걷다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샴비가 좋아하는 풀을 뜯어주면, 그릉그릉 하고 감사의 표시를 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샴비는 여느 고양이들이 질색하는 목욕을 시킬 때도 그릉그릉 소리를 낸다. 그만큼 사람의 손길이 그리운 게다.

 

 

“난지스튜디오에 입주하고 나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니까 샴비가 우울해해서, 아무래도 스튜디오에서 숙식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샴비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털이 푸석푸석해져요. 고양이인데도 그루밍을 잘 못하거든요. 어쩌다 두 달 가까이 목욕을 못 시켜준 적이 있는데 어찌나 꼬질꼬질하던지…. 샴비는 심통이 나면 안하던 해코지를 해요. 책꽂이에 꽂힌 책을 한 30권쯤 꺼내놓고, 쓰레기통은 뒤집어서 쓰러뜨리고, 프린터 위에 있는 책은 앞발로 꺾어놔요. 밖에다 대고 크게 울기도 하고요.”

 

 

 

 

날카로운 선묘로 그려낸 고양이 인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재료가 콘테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붓이 애무하듯 부드럽게 캔버스를 핥고 어루만지는 도구라면, 콘테는 딱딱하게 각을 세운 제 몸을 캔버스에 문질러 소멸시키며 날카로운 궤적을 남긴다. 끝이 뭉툭해지면, 220번 사포에 콘테 끝을 갈아 다시 날카로운 모서리를 만든다. 묻어나는 가루는 휴지로 틈틈이 닦아내가며. 그렇게 가느다란 상흔처럼 반복된 가는 선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보드라운 털로 뒤덮인 고양이 인간의 모습이 나타난다.

 

 

 

“콘테로 작업을 하다보니까, 그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조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도 콘테가 깎이면서 그려지는 선의 느낌이 좋아요. 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할 때, 다른 수업은 도제식으로 엄격히 전통 방식을 따라 그려야 했지만, 콘테로 그렸던 누드크로키는 자유로워서 좋았거든요.”

 

 

고양이의 털을 한 올 한 올 묘사하려면 콘테를 날카롭게 깎아 써야 하기 때문에, 깎여서 버려지는 양이 거의 반이다. 주변 사람들이 유화물감으로 재료를 바꿔보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콘테를 계속 실험해보고 싶다. 재래시장에 나가 여러 종류의 천을 끊어다가 실험하면서 콘테가 가장 잘 안착되는 천을 찾았고, 그것이 지금 사용하는 다이마루다. 중요한 사후 정착 문제도, 시행착오 끝에 만족스런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됐다. 요즘은 작업실 한켠에 투명한 비닐로 벽을 만들고, 에어건으로 정착액을 뿌려 마감한다.

 

 

 

한참 재료 이야기를 하던 작가가 싱크대 위 찬장을 열어 보인다. 양념이며 그릇이 들어있어야 할 찬장에는 그림 재료만 가득하다. 가끔 그림을 팔아 돈을 벌면, 같은 색의 재료를 많이 사 둔다. 콘테에는 유분 성분이 있는데 회사마다 유분의 비율이 다르고, 심지어 같은 회사의 같은 종류에서도 가끔 차이가 나기 때문에, 쓰던 색깔이 수입 중단되거나 품절되면 같은 느낌을 낼 수 없어서다. 속 모르는 친구들은 작업실에 쟁여둔 재료를 보고 “와, 너 부자구나” 하고 놀라지만, 실은 그런 고충이 있단다.  

 

 


 

눈동자 속에 담긴 우주를 그린다

 

성유진의 고양이 그림에서 가장 오래 시선이 멈추는 곳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장식된 커다란 눈동자다. 미로처럼 복잡한 선과 문양으로 장식된 눈은, 분열 중인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 같기도 하고, 깊고 푸른 어둠으로 가득 찬 우주의 단면 같기도 하다. 성유진은 고양이 인간의 눈동자를 만다라 삼아, 수많은 선으로 가득 찬 형상을 반복해 그리면서 마음의 평안을 구한다. 불교적 도상으로서의 만다라는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그리는 그림이지만, 내적 요구에 따라 자유롭게 그려지는 성유진의 만다라는 내면의 문제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도구가 된다.

 

 

 

“대화를 할 때 솔직해야 진심이 전달되는 것처럼, 그림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가식적이지 않게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샴비와 함께 사는 생활 이야기부터, 저의 내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가 그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치유와 소통이다. 혼자만의 것으로 여겼던 불안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버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불안에서 조금씩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안함 역시 영구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그림 그리기를 멈출 수 없다. 꾸준히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010년 2월경에는 직접 만든 고양이 인형 300여 개를 모아 서울 종로구의 갤러리 스케이프에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그가 만들어낼 ‘부드러운 조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고경원

길고양이가 있는 골목을 누비며 찍은 사진과 글을 모아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펴냈다. 출판기획자로 일하면서 '길고양이 통신'(catstory.kr)에 일본 고양이 여행기를 비롯한 고양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예술가의 고양이>에서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예술가의 작업실을 찾아, 영감의 원천이 된 고양이의 독특한 매력을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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