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gif Yu Jin, Sung-신경증 고양이-이병희(평론).pdf



신경증 고양이

 

 

이병희(미술평론가)

 

 

부산의 대안공간 반디에서 작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 젊은 작가 성유진의 전시가 진행중이다.

작가의 작업은 온라인상의 블로그에서 또한 진행중인데, 여기서 그녀가 창조해낸 괴상한 고양이의 이야기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많은 젊은 미술 작가들은 독특한 그들만의 캐릭터를 내세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것들은 단지 화가의 초상이나 상상의 피조물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다양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것들은 몽상을 하거나, 환상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며, 알 수 없는 우울함이나, 슬픔과 같은 것에 젖어있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종종 등장한다. 과연 이러한 정서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왜 그런 것일까.

 

성유진의 고양이는 콘테로 그려진 까만 털의 고양이이며, 거의 털이 다 벗겨진 가늘고 긴  신경질적인 손가락을 지니고 있다. 마치 그 고양이는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항상 눈가는 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표정은 우울하고 매우 피곤해 보인다. 그 고양이는 때론 책상과, 때론 나무와 일체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체들은 검은 고양이의 몸의 일부이기도 하며, 어떤 경우는 토막 난 고양이의 몸에서 무엇인가 고통을 암시하는 듯한 덩어리들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은 이번 전시 제목 <불안 바이러스>가 암시하는 것처럼 불안 덩어리인 고양이가 일종의 바이러스를 주변으로 증식, 감염시키는 상태를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왜 하필 불안바이러스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비교적 분명한 사랑바이러스, 행복바이러스, 혹은 살인바이러스, 심지어 자살 바이러스도 아닌 불안이라는 무엇인가 쉽게 알 수 없고, 확실한 근원도 없으며, 서서히 사람들을 잠식해가는 그런 바이러스에 많은 공감이 가는 것일까. 불안이란 마치 대기처럼 곳곳에 스며들어 퍼져나간다.

그것의 원인과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감염된 자의 눈은 충혈되어 있고, 항상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며, 대인관계나 사회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온갖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 속에서, 은밀한 혼자만의 환상이나 상상의 공간을 찾고자 한다.

 

이렇게 주변으로 증식해가는 일종의 바이러스이기에 불안의 초상은 단지 예민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개개인이 속한 사회 전체를 잠식하며, 사회 전체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극도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이런 모습이 우리가 우리 자신과 새롭게 만나기 위해 거쳐야하는 근본적인 반성의 바로 그 순간이라면 어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현실속의 갖가지 고통, 불평등, 불합리,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전체의 몸부림을 보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