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새벽 5시 눈이 떠졌다.

어제 과탄산나트륨에 담가 두었던 빨래를 하고,아침 식사를 한 후 혁신센터에 벽 드로잉을 위해 불광동으로 갔다.

여전히 공사가 한창 중이라 일하시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벽에 그릴 공간으로 들어갔다.

다른 공간은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바닥에 에폭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혼자서 조용히 벽을 들어다 보고 있으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과거 이곳이 동물 실험실이라는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계획에 없던 동물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원래 하려고 했던 이미지 보다 조금 더 그려지게 될 꺼 같다.

아직 후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공간 냄새는 맡지 못하고 있는데, 함께 공간 미팅에 참여했던 작가분에게 들었을 때

공간에서 나는 냄새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림 그릴 공간 냄새는 모르지만, 창과 문이 있어서 환기가 잘되는 곳이다.

그림 그릴 때 답답한 공간 보다는 공기가 흐르는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좋다.

먼지가 수북히 쌓인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드로잉을 하고 있으니, 리모델링 작업을 하시는 분이 오셔서 호기심에 이것 저것 물어보셨다.

피부병 때문에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목소리가 더 작아져서 그런지 같은 말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점심은 집에서 먹으려고 11시 넘어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토요일이라 그런지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과 길거리와 전철 입구에서 김밥을 파는 분들이 유난히 많았다.

집에 도착하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집 수도 공사 때문에 수도가 잠겨 버린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미안해 하시면 점심을 시켜서 함께 먹자고 하셔서, 중국집에서 잡채밥을 시켜 함께 먹었다.

10년 넘게 이 동네를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이사 오기를 반복했다. 오랫 동안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도 보고, 아이들은 순식간에 성장해서

떠나는 것도 보았지만, 이 집들이 언제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었지는 오늘 주인아주머니를 통해 처음 들었다.

지금 내가 있는 구간은 70년대 만들어진 곳이 많은데, 바로 옆 블럭은 일제 시제 때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옆 블럭에서는 8년 넘게 재개발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듯 하다. 지나가며 대자보가 붙여지는 걸 보며, 파가 나뉘어지고, 사람들간의 갈등이 깊다고 생각 했는데,

오늘 들은 이야기들 속엔 재개발로 인한 스트레스로 꽤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주머니께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셔서, 밥을 먹으며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년 넘게 동네를 관찰하면서 나름 독특한 이웃들이 많다는 걸

어림짐직하고 있었는데.....두 시간 동네 사정들을 다 알아버린 것만 같다.

식사를 하면서 수도가 고쳐지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 드로잉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은 생각했다.

가능하면 몸 컨디션이 돌아 올 때까지는 밤 늦게 작업을 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오늘은 새벽이 주는 고요함과 짙은 적막함 속에서 작업에 몰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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