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gif Yu Jin, Sung-자아를 찾는 고양이 여인-고경원.pdf 


 

[고경원의 그로테스크 아트 9] 자아를 찾는 고양이 여인

 

--- 성유진의 드로잉, 그 속에서

 

고양이와 개는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반려동물이지만, 그 차이는 적지 않다. 부르면 잽싸게 달려오고 우직한 충정을 보이는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사람이 불러도 콧방귀나 뀔뿐더러, 여간해선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양이의 애정 표현이라고 해봐야 가끔 생각난 것처럼 반려인의 다리에 제 몸을 툭 스치며 사라지거나, 몸을 쓰다듬어주면 그렁그렁 소리를 내는 정도다. 게다가 어둡고 좁은 곳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고양이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고양이의 습성에 빗댄 것인지 모른다.

 

동물 같기도 하고, 여인 같기도 한 돌연변이 생명체의 모습. 고양이의 모호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화가 성유진은 이렇듯 속내를 알 수 없는 고양이의 모습에 자신의 자아를 반영한 그림을 그린다.

그는 종이 위에 고양이털을 심기라도 하듯이, 콘테로 섬세한 선을 한 가닥씩 긋는 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그림을 완성 시킨다.

최근 주목받는 현대미술 작가들 중 대다수가 작품에 대한 개념만 제공할 뿐, 실물 제작은 공장에 맡겨 공산품처럼 깔끔하게 완성된 결과물을 생산해낸다는 사실도, 성유진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성실한 손이다.

마치 구도자가 한 가지 화두를 반복해서 되뇌며 마음을 닦듯이, 성유진은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에 몰두한다. 그런 그의 작업을 두고 굳이회화의 복권이라는 둥 거창한 표현을 쓰는 건, 오히려 작업의 본질을 흩트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작가가 선과 선 사이에 겹겹이 심어둔 마음의 흐름을 뒤따라가는 일이 우선시된다.

 

각성을 꿈꾸는 눈이 머릿속에 씨앗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성유진이 즐겨 그리는 것은 인간과 동물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기묘한 생명체이다. 분명 몸뚱이는 동물의 몸인데, 골똘히 생각에 빠지거나 약에 취한 듯 몽롱한 얼굴 표정은 인간 족속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동물 같기도 하고, 여인 같기도 한 돌연변이 생명체의 모습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도, 작가는 고양이처럼 말을 아낀다. 대신 몇 가지 반복되는 요소를 드러내면서 관람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길 권한다.

고양이와 자신의 에고를 동일시하는 작가의 작품에서 인상 깊은 것은 고양이의 눈이다. 예컨대 몇몇 그림에서 눈 부분을 손으로 가려 보자. 원본의 기이한 매력은 사라지고, 꼼꼼히 정성 들여 그렸으나 평범한 동물 그림에 지나지 않게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을 치워 그림 속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관람객의 마음속에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의 그림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빛의 밝기에 따라 커졌다 작아지는 홍채를 지닌 현실의 고양이 눈 역시 신비롭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성유진이 그린 눈은 마치 고양이의 몸에서 독립된 별개의 개체처럼 보인다. 살아 움직이는 세포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것도 같고, 겹꽃을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변환한 것 같기도 한 눈동자가 그의 그림에 힘을 불어넣는다.

 

자기 환멸이 구토로 이어지는 모습. 작가가 믿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입으로 토해낸 손의 힘?

흔히 눈이 의식의 중심으로서 통합된 자아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 이러한 눈이 강조되는 그림은 의식의 개안을 상징한다. 눈을 감는 대신 뜨고 있는 상태는 자기 인식을 지향하는 태도를 의미하는데, 특히 머리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작은 머리들, 또 다른 눈들은 내적 각성에 대한 갈망을 보여준다.

입 속에서 십여 개의 손들이 튀어나오는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기 환멸이 구토로 이어지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성유진이 그림 속에 빽빽이 그려 넣은 그 눈들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흐려질 때, 작가가 가고자하는 길을 올곧게 인도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때론 눈동자가 튀어나올 만큼 커다란 눈을 희번덕거리고, 때론 심기가 불편한 듯 일그러뜨린 눈을 한 성유진의 고양이 여인들은 서교동 갤러리HUT <‘EGO’라는 사탕을 물다>전에서 볼 수 있다.

 

 

고경원 _ 자유기고가 aponian@hanmail.net